고소한 냄새가 주방을 가득 채우고, 이내 식당을 지나 복도까지 퍼져나간다.
입맛을 돋우는 향에 절로 안까지 발걸음이 이끌린 불도장은 커다란 솥에서 무언가를 볶고 있는 시옌을 발견했다.
“소주, 뭐하고 계세요?”
열기를 이겨가며 열심히 조리 중이던 시옌은 다정한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이마에 맺힌 땀을 목에 건 수건으로 훔친 그는 뿌듯함 넘치는 표정으로 답했다.
“오늘은 블랙 데이니까, 작장면을 만들고 있지.”
“블랙 데이?”
“응! 애인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검은색 음식을 먹는 날이야.”
‘그런 날도 있는 건가.’ 불도장은 참 별난 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제 생각을 내뱉진 못했다. 시옌이 이렇게 즐겁게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이 기묘한 기념일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건지,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온 또 다른 식신은 정색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거 이상하군. 넌 내 거잖아? 애인이 없다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귀성마라불닭은 열심히 장을 볶는 시옌의 머리 위에 제 머리통을 얹었다. 콩, 하고 정수리에 닿는 상대의 턱에 한숨 쉰 시옌은 장난스럽게 상대의 말에 딴죽을 걸었다.
“귀성 대인, 애인과 소유물은 다르니까 그냥 드세요.”
“어쭈. 이 몸의 말에 말대꾸하다니. 이제 다 컸다 이건가?”
“나는 원래 다 컸었는데?”
두 사람이 만담 같은 대화를 하는 사이, 어느새 냄새를 맡고 온 사람이 한가득 늘었다.
바깥에서 놀다가 온 것인지 사이좋게 옹기종기 붙어 나타난 빙탕후루와 청단, 취궐어는 어미 새를 반기는 아기 새들처럼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런데, 소주 혼자 만들어서 언제 다 같이 먹어? 자리를 비운 사람들도 있지만, 식신이 이렇게나 많은데?”
“맞아! 우리도 도와줄게!”
“저, 저도 소주께 도움이 되고 싶어요.”
묵묵히 손을 움직이고 있긴 했지만, 역시 모든 걸 혼자 하긴 힘들었던 걸까. 그 기특한 소리에 눈이 번쩍 뜨인 시옌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래?”
“네!”
“소주,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다 같이 식사 준비를 하죠.”
세 아이뿐만이 아니라 불도장까지 돕겠다고 나서니 할 말이 없는 걸까. 귀성마라불닭은 더는 말을 얹지 않고 식당으로 가버린다. 이 와중에도 돕지 않고 나올 식사만 기다리는 점이 참으로 그답다고 할까. 시옌은 그를 굳이 붙잡지 않고 손을 거드는 식신들에게 할 일을 하나씩 분배했다.
“응? 이건 웬 고소한 냄새야?”
그렇게 부엌이 북적북적해졌을 즈음. 한발 늦게 공상으로 돌아온 총소해삼이 부엌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까보다 여유가 생긴 시옌은 온화한 미소로 상대를 반겨주었다.
“안녕, 총소. 오늘도 선탠하고 오니?”
“아, 혹시 티가 나?”
“음……. 그래, 조금 더 피부색이 짙어진 거 같기도 하고.”
사실은 차이를 하나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듣기 좋은 대답을 해줘야지.
빈말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총소해삼은 시옌의 대꾸를 듣곤 보람찬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서, 지금 만드는 건 뭐야?”
“작장면. 블랙 데이라서, 다 함께 먹으려고 만들고 있지.”
“뭐?”
의아함 가득한 반응과 함께 총소해삼이 시옌을 빤히 바라본다.
당황스러움과 황당함까지 느껴지는 시선에 멈칫한 그는 무슨 문제냐는 듯 물었다.
“왜 그래?”
“아니, 다른 사람들이면 몰라도 너도 먹는 거야?”
“그렇지?”
“왜?”
“너는 먹을 필요가 없잖아. 내가 있으니까.”
“아.”
‘이 녀석, 귀성이랑 짰나.’ 목젖까지 차오른 말을 도로 삼킨 시옌은 좋은 말로 이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친애의 감정으로 머리가 가득한 식신은 귀가 먼 상태였다.
“총소, 자고로 연인이라는 건…….”
“우리는 둘이서 오붓하게 식사하고 오자고. 자, 가자.”
“뭐? 아니, 저기?”
제 말은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는지, 총소해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옌의 손을 잡고 부엌 밖으로 나선다. 앞치마도 벗지 못하고 끌려 나가는 시옌의 모습은 꽤 눈에 띄었기에, 식당에서 수저를 놓던 곡갱은 자리를 뜨는 둘에게 절로 시선이 돌아갔다.
“총소, 어디 가십니까?”
“시옌이랑 점심 식사.”
“예?”
“작장면은 너희끼리 먹어. 우린 고기 썰러 갈 거니까.”
‘아, 이런.’ 온화한 곡갱은 한탄할 뿐 그를 말리지 못했지만, 다른 식신들은 그렇지 못했다.
“앗! 총소 형이 소주를 데려간다!”
“뭐?”
“어림도 없지!”
청단의 외침을 시작으로, 식사 준비를 하던 식신들과 밥을 먹기 위해 대기하던 식신들이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나와 총소해삼을 쫓기 시작한다.
뒤따라오는 수많은 발소리를 들은 그는 가볍게 어깨를 떨더니, 팔만 붙잡고 데리고 가던 소주를 번쩍 안아 들었다. 평소 꿔 집사의 트레이닝을 받고 있긴 해도 한낮 반신 여성인 시옌은, 어찌 저항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덜렁 들려질 뿐이었다.
“이크, 이러다가 잡히겠네. 미안해, 시옌. 실례!”
“우왓!”
마치 종잇장처럼 가볍게 상대 품에 안긴 시옌은 멀리서 쫓아오는 이들을 확인하곤 헛웃음이 터졌다. 다들 부엌에 불은 끄고 자신들을 따라오는 건지, 요리사다운 걱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개판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얌전히 있을 걸 그랬나.
그리 후회해 봐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