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촬영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들었다.
뭐해?
오늘이 포토 데이라니까.
그런 것도 있어? 아니 그전에 그런 것도 아네. 농구만 아는 줄 알았더니.
요즘 애들하고 지내려면 이런 건 기본이지!
찰칵. 또 한 번 소리가 들려왔다. 셔터 소리에 가만히 있으니 사실 이거 동영상인데~라는 목소리가 이어져 왔다. 그제야 당황해 카메라를 빼앗으려 소릴 질렀고 상대는 웃으면서 안된다며 카메라를 높이 들어 위에서 아래로 그러다 손이 불쑥 눈앞으로 가려 어두워졌다.
“대리님? 말씀하신 서류 복사해왔는데요.”
“네. …네? 아. 감사합니다.”
“저… 실례가 안 된다면 남자친구분이실까요?”
“아뇨. 서류 복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민 복사된 서류뭉치를 받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면은 빠르게 창을 내려 기본 프로그램의 배경 화면이 눈앞에 보이자 상대 역시 이어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일하던 중 갑자기 드라이브에 뜬 알람을 확인을 하는 게 아니었다. 몇 년 전 오늘의 사진과 영상을 확인해보세요.라는 그때 무엇을 했을까 궁금증을 유발하는 멘트에 넘어가 버려서. 소문이 날까. 서류를 복사해 준 후배 직원에 대해 아직 판단되지 않아 상황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내일이 되어 탕비실이나 휴게실에 간다면 알긴 하겠지만… 서류 뭉치를 회의실 자리마다 하나씩 올려놓는 동안 밖에서 들어오는 빛에 눈을 살짝 찡그리며 자연스레 그 빛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파란색이 잘 어울리는 얼굴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잘생긴 얼굴과 좋은 피지컬로 인기가 많은 농구 선수의 얼굴이 전광판에 보인다. 여전하구나. 넌.
“…대리.”
“죄송합니다. 곧 마무리하겠습니다.”
자꾸 딴생각을 하면 안 되는데. 잠깐 사진과 영상 하나를 봤다고 이렇게 흔들릴 거였으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어 입술을 깨물었지만, 다행히 상사는 제 말만 뱉은 뒤 혀를 차며 사라진 뒤였다. 빠르게 들고 있던 서류를 마지막 자리에 내려놓은 뒤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일단은 당장 해야 할 회의가 중요했으니까.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어 버스 위에 실었다. 좌석에 앉고 한 정거장, 어르신을 발견해 자리를 양보한 뒤 천장에 달린 손잡이에 겨우 버티면서 창밖을 바라봤다. 주머니 속 진동에 여유로운 손을 넣어 손에 잡히는 스마트폰을 꺼내 내용을 확인한다. 상단 알람으로 보이는 포토데이, 사진을 기념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라는 문장에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올렸다. 자연스레 연결되는 드라이브엔 아까와 같은 사진과 영상, 그 아래로 다른 연도의 오늘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누르지 말걸. 하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대중교통 이용 중이고 사람들도 주변에 많으니 일단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서서 보기엔 불편할까 했는데 어르신께서 옷을 잡아끌더니 아가씨 고마웠다며 앉아있던 자리를 직접 앉혀주고는 하차했다. 여유로워진 손에 따라 다시 폰을 꺼내 사진이 아닌 플레이 표시가 있는 영상을 눌렀다.
이어폰을 통해 들어오는 목소리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그때의 상황으로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당시 나는 혼자만의 취미에 빠져있던 터라 용돈을 모아 산 카메라를 들고 다녔었다. 등교할 때도 어딜 놀러 갈 때도. 그때마다 모델이 되어준 건. 엄마 친구 아들. 좋아하는 남자. 남자친구였다. 농구를 하던 그라서 대부분의 사진은 농구 유니폼이나 농구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아주 가끔은 사복을 입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가족 모임에도 꼬박꼬박 참석하면서. 부모님들 몰래. 그러다 들키기도 했지만. 가까워진 거리만큼이나 관계도 자연스레 바뀌었다. 이어졌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소꿉친구의 관계 같은 것처럼.
영상이 멈춤과 동시에 훅 버스에 앉아있던 자신을 깨달았다. 정류장 위치를 확인하고 내려야 할 곳을 지났다는 걸 알아차리곤 주머니에 대충 핸드폰을 넣고 카드를 꺼내 급히 하차 벨을 눌렀다. 곧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고 카드를 찍고 내리니 택시를 타기도 애매한 거리임을 확인하고선 그냥 걷기로 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괜찮았다. 카드를 지갑에 넣고 다시 폰을 꺼냈다. 폰은 다시 사진 목록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숨을 길게 내쉬고선 상단 바에 있는 전체 선택을 눌렀다.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각자의 일로 바빠지고 서로에 대한 익숙함 때문인지 이어지는 서운함의 굴레는 다툼에서 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후회하고 사과하고. 반복하는 상황에서 지쳐버린 건 체력도 여유도 없던 내 쪽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여유롭지 못했고 한심하고 이기적이었다.
병찬아, 우리 헤어지자.
그래.
그런 나를 상대 역시 버티지 못했을 거다.
잘 지내.
“아.”
“어?”
조금 전까지 눈앞에 있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의 남자가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자 꿈인가 싶어 손등으로 눈을 비볐다. 다시 고개를 들어 확인하니 점점 제게로 다가오는 몸에 놀라 뒷걸음질을 치자 다가오는 걸음이 멈췄다.
“미안. 놀랐어?”
“당연히 놀라지 않을까.”
“여전하네.”
잠깐의 정적. 적당한 거리.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농구선수 아냐? 에이, 설마. 저렇게 대놓고 다니진 않겠지. 수군거리는 목소리에 잠깐 걸을까. 손가락을 공원 쪽으로 가리켰다. 거기를 유지한 체 걷다 빈 벤치를 발견에 병찬이 먼저 자리에 앉자 따라서 옆에 앉았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될 줄이야. 중얼거림에 상대 역시 무슨 말을 중얼거렸다. 잘 들리지 않아. 무슨 말을 했냐 물으려니 다른 말을 했다.
“안 그래도 너한테 할 얘기가 있었거든.”
“나도 병찬이 너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어.”
“그럼 먼저 말해.”
“그래. 있잖아.”
오늘 보여준 사진으로부터 시작했다. 당시의 나의 상황과 기분, 마음이 어땠는지. 변명뿐이었지만 병찬은 끝까지 말을 들어줬다.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 이랬다저랬다 하는 말을. 다 들어주고 나니 병찬은 대답했다. 괜찮아.라며 자신의 이야기도 시작했다.
“그러다 오늘이 포토데이라면서 사진을 저장한 드라이브에서 몇 년 전에 촬영한 오늘의 사진을 보여주더라고.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봐서 네가 사는 곳을 찾아왔어. 전화했는데 안 받길래.”
“아. 미안. 방해금지 모드로 해놨어. 이 번호가 네 번호구나.”
“저장해 줄 거지?”
“응. 미안. 나 때문에 고생했네.”
바로 폰을 들어 화면을 켜니 전체 선택이 눌린 앱을 종료하고 일단 방해금지 모드를 끄고 통화목록을 확인하니 같은 번호가 빨간색으로 목록에 표기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사과를 한 뒤 그 번호를 꾹 눌러 번호 저장을 했다. 새로 저장을 확인이라고 하려는지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못 믿... 을만도 했다. 어색하게 웃고 있는데 바로 저장된 이름, 박병찬이라는 이름과 함께 폰 화면엔 번호 주인이 설정한 사진이 떴다. 목록에 있었던 익숙한 사진. 예전 자신이 찍어준 학생 시절의 병찬의 사진. 혼자서 좋아했을 때 자신을 좋아하는 줄 몰랐던 병찬이 줄곧 내게 찍어준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며 배경 화면으로 하기까지 했었다.
그 사진을 보다 고개를 드니 훨씬 어른스러운 얼굴의 병찬이 웃고 있었다. 공원 가로등을 등지고 있던 그였지만 그늘진 얼굴에도 웃는 얼굴이 눈에 담겼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병찬은 폰을 쥐고 있던 내 손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어갔다. 그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손을 빼려니 큰 손이 이번엔 빠지지 않게 잡았다. 네 대답을 듣고 싶어. 병찬의 말을 끝으로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확실히 하고 싶은 대답은 있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아까와는 다른 솔직한 마음을 입 밖으로 꺼냈다.